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혁거세 거서간 (문단 편집) == 건국 신화 == [[박(식물)|박]]처럼 생긴 [[알]]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으며 성을 박씨로 정한 것도 그 이유다. >[[고조선|조선(朝鮮)]]의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아 6촌을 이루었다.[* 현재 [[경상북도]] [[경주시]] 일대. 참고로 이 유민은 [[위만조선]]의 국상이었던 [[역계경]]이 고조선에서 [[진국(국가)|진국]]으로 망명했을 때 함께 남하한 [[예맥]]인 일파라는 가설도 있다.] 첫째는 알천(閼川) 양산촌(楊山村), 둘째는 돌산(突山) 고허촌(高墟村), 셋째는 취산(觜山) 진지촌(珍支村, 간진촌(干珍村)이라고도 한다), 넷째는 무산(茂山) 대수촌(大樹村), 다섯째는 금산(金山) 가리촌(加利村), 여섯째는 명활산(明活山) 고야촌(高耶村)이라 하였으니, 이것이 [[진한]](辰韓) 6부(六部)가 되었다. 어느 날 고허촌장 [[소벌공]](혹은 [[소벌도리]])이 양산 기슭을 바라보니 [[나정]] 곁의 숲 사이에 [[말]][* 《[[삼국유사]]》에는 [[백마(신라)]]라고 되어있다.] 한 마리가 무릎을 꿇고 울고 있었다. 그래서 가 보니 갑자기 말은 보이지 않고, 큰 [[알]][* 《삼국유사》에는 보랏빛 혹은 푸른빛이라고 되어있다.]이 한 개 있어 깨뜨려 보니 한 아이가 나왔다. 소벌공은 그 아이를 데리고 와서 잘 길렀는데, 10여 세가 되자 유달리 숙성하였다. 6부 사람들은 그 아이의 출생이 신기했으므로 모두 우러러 받들어 왕으로 모셨다. [[진한]] 사람들은 표주박을 박(朴)이라고 하였는데, 혁거세가 난 커다란 알의 모양이 표주박 같이 생겨서 성을 박으로 하였다. >---- >《[[삼국사기]]》 [[알]]에서 태어났다는 [[난생설화]]는 [[세계]]적으로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일반 [[인간]]과 다른 특별한 탄생이라는 장치로 신비감을 높이기 위해서이다.[* 드물게 양막이 터지지 않은 채 태어난 [[아기]]가 존재하므로 이를 알에서 태어났다고 표현했다면 허구가 아닐 가능성도 있다.[[http://www.etoland.co.kr/bbs/board.php?bo_table=etohumor02&wr_id=1664456|#]]] 《삼국사기》뿐 아니라 《삼국유사》에서도 위와 비슷하게 천상에서 내려온 [[백마(신라)]]가 [[나정]]에 싣고 온 자색 알에서 혁거세가 태어났고, [[천자]]라 불렀다고 서술하고 있다. 양대 사서에서는 혁거세 이전 [[경주시|경주]]에 옛 [[고조선]]이 멸망하고, 남하한 유민으로 구성된 6촌이 있었고, 신비하게 등장한 혁거세가 성장하자 6촌 촌장들의 추대로 왕에 올랐다고 쓰고 있다. 《삼국사기》에 쓰인 위의 [[설화]]에 의하면 성씨의 '박'은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. 후대의 문헌 기록인 《삼국사기》뿐 아니라 [[법흥왕]](제23대) 때의 당대 기록인 [[울주 천전리 각석]]에도 가운데에서 약간 오른쪽에 혁거세 난생 설화를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[[그림]]이 있는데 여기에는 '박'이라는 [[성씨]]에 관한 정보가 등장하지 않기에 혁거세가 당시에 '박'이라는 성씨를 가지지 않았고, [[후손]]들이 소급해 올린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나 학계에서 제대로 [[연구]]되어 있지는 않다.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경주의 나정은 이후 신라 [[왕실]]의 성지가 되었고, 그 자리에 [[신궁]] 등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. 다른 기록으로 [[선도성모]]가 박혁거세를 낳았다는 기록도 있다. 혁거세와 알영은 《삼국유사》에 의하면 경주 서남쪽 훗날의 창림사[* 《삼국유사》에서는 주석으로 '지금의 창림사 자리다'라고 소개했다. '지금'이란 《삼국유사》를 쓴 [[일연]]이 살던 [[고려시대]]를 말한다. 현대에는 창림사도 사라지고 [[창림사지 삼층 석탑]]([[보물]] 제1867호)만 남아있다.] 자리에 궁실을 짓고 길렀다고 하는데 현재 나정과 직선 거리로 1㎞도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위치다. 그러다 기원전 57년 경주 일대의 6촌 촌장[* 사로 6촌장. 유리 이사금(제3대) 때 첫째 알천 양산촌 촌장에는 [[이(성씨)|이씨]], 둘째 돌산 고허촌에는 [[최(성씨)|최씨]], 셋째 취산 진지촌에는 [[정(성씨)|정씨]], 넷째 무산 대수촌에는 [[손(성씨)|손씨]], 다섯째 금산 가리촌에는 [[배(성씨)|배씨]], 여섯째 명활산 고야촌에는 [[설(성씨)|설씨]] 성이 하사되었다.]들의 추대로 13세에 왕으로 즉위해 재위 5년에는 비슷하게 설화적인 탄생으로 태어나 2명의 [[성인]](二聖)으로 꼽히던 알영부인과 [[결혼]]했다고 한다. 알영 탄생 설화에 대해서는 [[알영부인]] 문서 참조. [[단군신화]]도 그렇듯 설화를 현실적인 역사로 [[해석]]하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해석 방법은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>혁거세로 대표되는 '''북방 기마 세력'''[* 경주 일대의 통칭 가운데 '''계림'''(鷄林)이 있는데, 설화에서는 닭(鷄)이 아닌 '''{{{#red 말(馬)}}}'''이 등장하고 있다. <[[김알지]] 탄생 설화>에서는 멀쩡하게(?) 닭이 나왔음을 떠올려 보자.]이 청동기 문화에 머물러 있던 경주 분지로 들어와, [[기병|기마술]]과 '''[[철기]]'''[* 혁거세의 건국 시기와 일치하는 구정동·조양동 등 경주의 여러 고분에서는 철제품과 철제 무기가 다량으로 출토됐다. 그 중 주목할 것이 철제 마구(말재갈)인데, '''청동제 마구는 경주에서 나온 적이 없다'''. 이는 기마 세력이 철기도 함께 챙겨들고 왔다는 뜻이다.]를 바탕으로 토착 6부족의 지지를 얻어 나라를 세웠다. 는 식으로 해석하고 있다.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신화 해석이 있는데 혁거세는 하늘에서 왔고, 알영은 땅([[우물]] 알영정)에서 나왔으니 혁거세는 외부 출신이고, 알영은 좀 더 먼저 경주에 정착해 있던 집단 출신이라거나, 김씨의 시조인 [[김알지]]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[[닭]]이 알영부인 신화에서도 나오는 점을 보아 알영이 이후 박씨와 혼맥으로 맺어질 김씨 집단[* 실제 역사에서 성씨를 사용하기 시작한건 좀 더 이후의 일이지만 훗날 김씨, 박씨, 석씨 등으로 소급될 서로 구분되는 집단은 성씨 사용 이전부터 존재했다.]의 상징 여성일 거라는 추정도 있다. 그리고 건국 신화는 말 그대로 '신화'라도, 그 이야기의 뼈대는 늦어도 [[이사금]] 시대에는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. '구성 집단 대표자들의 회의와 합의로 왕이 추대된다'는 건국 신화의 기본 구조를 보면 김씨 왕계가 확립되고 중앙집권화가 어느 정도 진행된 [[마립간기]]보다는 이사금기의 사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